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L×四月 - 엘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L Lawliet · April Wright
2012年 4月 1日
一日目
「전철에서 만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단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어깨를 붙잡았더니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놀라게 했던 걸까. 겁이 많은 성격인 걸까. 조금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나를 보며 한참을 말도 없이 울다가, 이상하리만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를 하더니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아마미야 시키라고 해요.” ……라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신기한 경험이었다. 울다가 웃는 여성.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했더니 자신도 그 역에서 내린다고, 우연이라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얗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한 금발의 붉은 눈.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 걸까. 아직까지 내가 왜 말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괜한 생각이겠지. 운명이라는 걸 믿지는 않으니. 아마미야 씨와 함께 내린 역에서 우린 한참을 같이 걸었다. 저녁이 다 끝나갈 때까지. 목적지도 잊고 계속해서. 걷던 중, “아까 제 어깨는 왜 잡은 거예요?” 하고 묻길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왠지…… 그런 기분이라서요.”라고 말했더니 아마미야 씨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끝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헤어졌다. “내일 만나요.”라는 작별 인사에, “네.”라고 대답했다. 전화번호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건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내일. 만날 수 있는 걸까.」
2012年 4月 2日
二日目
「식물원에서 그 여자를 보았다. 정확히는 갑자기 나타났다. 온실에서 노란 튤립을 촬영하던 중, 내 이름을 부르며 나타난 여자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이름을 말해준 적이 있었나? 여기에 있는 거라는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의문이 들어 물었더니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했다. 어제 전철에서 내린 역이 여기와 이어져 있고, 어제 결국 목적지에 못 갔으니 오늘 왔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이름도 내가 말해줬다길래 그런가보다 싶다. “운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했더니 “엘은 저랑 만나는 게 달갑지 않아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조금 당황했던 것도 같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당장 뭐라고 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시 아마미야 씨와 길을 걸었다. 아마미야 씨는 내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노란 튤립 사진을 가만히 보더니 “아까 찍었던 사진, 액자로 만들면 예뻐요.”라고 덧붙였다. 이미 보고 온 사람처럼 확신에 차 말하는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나중에 액자를 해서 선물해줘도 좋을 것 같다. 내일 또 보자는 말에 오늘도 손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2012年 4月 5日
五日目
「시키 씨는 언제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그게 신기하다. 오늘은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특별히 일정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기에 같이 카페에 갔다. 딸기가 올라간 쇼트케이크에 홍차를 주문했다. 시키 씨의 추천으로 처음 와본 카페였는데 꽤 좋은 인상이었다. 재방문 의향 있음. 오늘은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이름으로 불러도 돼요.”라는 말에 알겠다고 답했고, 시키 씨는 내게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뭐, 어떻든 상관없다. 오늘도 저녁이 다 지나 돌아가는 길, 시키 씨가 내 손을 잡았다. 놀랐지만 동요하진 않았다. 봄 날씨를 맞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에 맞잡았다. 연인 행세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시키 씨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눈물을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손을 처음 잡았을 때,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다시 울어버렸다. 이유는 모른다. 좋아서 그랬다고 답하기는 했지만, 좋다는 이유로 저렇게 울 수가 있는 걸까. 역시 시키 씨는 잘 모르겠다. 내일은 사진 인화를 하러 작업실에 가야 한다. 시키 씨도 함께 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잡은 제대로 된 약속이라는 걸 생각하니 놀랍다. 번호도 받아왔다. 장족의 발전이라 부를 만도 하다.」
2012年 4月 6日
六日目
「오늘 알았는데, 시키 씨의 이름은 四月이라 적는다고 한다. 4월의 첫날에 만난 사람이 4월의 이름을 했다는 점에서 꽤 신기하다고 말했더니 시키 씨는 그냥 웃었다. 바보같은 말이었던 건가. 오늘은 사진 인화를 위해 작업실에 왔다. 외부인은 한 번도 들인 적 없었지만, 왠지 시키 씨는 괜찮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이전에 찍었던 튤립을 인화하기 위해 인화지를 고르던 중, 시키 씨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원목 액자 프레임을 가리키면서 꼭 여기에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물으니 “이 액자가 제일 예뻤어!”라고 답하는 시키 씨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본 적이라도 있나요? …… 물어볼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화가 마무리되자 시키 씨는 사진을 뚫어질 만큼이나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또 울먹인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아.”라면서. 내 작품이 그렇게 감동적이냐고 가벼운 농담을 던졌는데 시키 씨는 진심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서 조금 민망하긴 했다. 좋게 본 것 같으니 다행인가. 시키 씨는 작업실에 준비해둔 커피를 익숙하게 내리더니 자신이 먹어본 커피 중 이곳의 커피만큼 맛있는 게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입에도 대어보지 않고 그렇게 말하면 어떡합니까.”라고 딴지를 거니 모르는 척 커피를 마셨다. 독특한 사람이다.」
2012年 4月 10日
十日目
「집에 시키 씨가 찾아왔다. 초대한 것이 맞긴 하지만. 오늘은 종일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재미도 없는 TV 프로그램을 잠시 틀어두었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컴퓨터도 잠시 들여다보다가……. 시키 씨는 자신을 집까지 데려와 놓고 이렇게 지루하게 있을 게 뭐냐며 툴툴거렸다. 재미있는 발상이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시키 씨는 고개를 젓는다. 산책이라도 가자 했지만, 그것도 싫다 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화를 틀었다. 로맨스 영화라던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열심히 감상했다. 사랑이라는 건 역시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중, 시키 씨가 말을 걸었다. “엘은 이런 마음 느껴본 적 없어?” 지금까지도 그 말에 어떻게 답변해야 좋았을지 잘 모르겠다. 시키 씨를 보면, 그런 것도 같은데. 두근거리기도 하고. 귀엽다고 느끼고. …… 보고 싶어지고. 그러면…… 시키 씨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고. 그래서. 입을 맞추었다. 시키 씨는 또 울었다.」
*
시키 씨가 돌아가고 난 후, 집에서 이상한 수첩을 발견했다. 두고 갔나 싶어 수첩을 열어보니 일기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남의 일기장을 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싶어 수첩을 닫으려 했지만 무언가 이상해서 다시 들여다보았다. 일기는 일기인 것 같은데, 내일 날짜였다. 4월 11일, 엘과 다툼. 앞으로 넘기면 12일, 13일…… 일기는 4월 15일로부터 시작된다. 첫 장. 4월 15일, 1일째. (엘에게는 15일째.) 엘과의 첫 만남. 엘의 작업실에 방문했다. 엘은 사진을 찍는다. 작업실에는 조명과 카메라들이 잔뜩이었고, 나는 그 가운데 앉아 사진의 모델이 되었다.
일기장의 속표지에는 시키 씨의 사진이 꽂혀있었다.
시키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대기음이 잠깐 울리더니 이내 시키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엘? 시키 씨, 이 수첩은 뭔가요. 시키 씨는 당황하더니 이내 침착해지며 말을 잇는다. 내일 설명해줄게. 전부 다. 설명할 일이 있나요. 응. 엘도 알고 있어야 해. …… 우선 알겠습니다. 내일 뵙죠. 응. 내일 봐.
2012年 4月 11日
十日一目
「작업실로 찾아온 시키 씨에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와 시키 씨의 시간은 반대로 흐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첫날이 시키 씨에게는 이별의 날이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내가 시키 씨와 헤어지게 되는 20일은 시키 씨에게 있어 첫 만남의 날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시키는 우리의 시간은 5년에 한 번 겹치는 순간이 온다고 답했다. 지금 이 일정들은, 5년 뒤의 내가 지금 이 일기를 보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시키 씨에게는 5년 전의 일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보통 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시키 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15년 전, 내가 시키 씨를 구했던 적이 있다. 고. 시키 씨의 주장에 따른다면, 나는 15년 후, 시키 씨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길거리에 쓰러진 여자아이를 업어다가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 그 일이다. 그 여자아이는 남자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15년 후, 연인이라는 형태로 찾아오게 된다. 그러니 이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라면, 그렇게 행하도록 기록되었기에 맞춰진 행동이라면. 두근거리는 마음에는 의미가 없다. 시키 씨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혼자 커피를 마셨다. 오늘따라 쓴맛이 불쾌해 설탕을 조금 더 넣었다.」
2012年 4月 12日
十二日目
「시키 씨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해, 라고.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고 보냈다. 지금 만날 수 있냐고 묻는 시키 씨에게, 이런 문자도 원래부터 계획되었던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문자를 보낼 수는 없다. 그건 그저 화풀이와 비슷한 거니까. 시키 씨는 지금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고, 알겠다고 했다. 시키 씨와 만나 며칠 전 함께 갔던 카페에 방문했다. 시키 씨는 유독 두리번거리면서 여기는 처음 온다고, 이런 곳에도 카페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오늘 만난 시키 씨는 지금까지 만난 시키 씨가 아니다. 눈앞에 있는 시키 씨는 어제의 기억이 없다. 지금까지의 모든 날이 그랬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이었던 거니까. 솔직히, 조금은 지친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연인이란 필요도 없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조차 바란 적 없었다. 멋대로 애정이라는 걸 믿었을 뿐. 그렇게 생각했다. 시키 씨는 자리에 앉아 커스터드 푸딩을 주문했다. “오늘은 엘의 12일 째니까 전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문을 연 시키 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어제 너와 헤어진 이후로 내내, 네가 보고 싶었어.” 시키 씨의 어제는 나의 내일.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내일은 맑아. 우리는 함께 미술관에 갔어. 당연한 것처럼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는 입을 맞췄어.” 시키 씨는 그래서 행복했는지 물었다. 시키 씨는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 그런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더니, 시키 씨는 이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왔으니,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2012年 4月 13日
十三日目
「하루도 빠짐없이 시키 씨를 만난 지 13일째. 시키 씨에겐 오늘로 3일째. 예정대로 미술관에 갔다. 오늘의 시키 씨는 평소보다 조금 더 쭈뼛거렸다. “아직 어색하죠.”라고 물었더니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손을 슬쩍 내미는 모습에 괜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종일 잡고 다녔다. 손을 잡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키 씨와는 이별하게 된다. 큰 난관도 없었지만, 그만큼 대단한 연인도 아니었지만. 이별에 가까워지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시키 씨는 나보다 연약한 마음을 지닌 주제에 더 커다란 이별을 맞이했고, 맞이할 예정이다. 시키 씨가 나와 이별하는 날, 나는 시키 씨와 모르는 사람이 된다. 마음이 좋지 않다. 맞닿은 손을 조금 더 굳게 잡았다. 오늘따라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시키 씨의 눈치를 보며 걷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 시키 씨는 내 앞을 잠시 가로막았다. 굿바이 키스를 해달라는 말에, 잠시 굳었다. 시키 씨는 원래도 적극적인 사람이구나.
내일은 무얼 하느냐고 물었다. 내일은 내 작업실에서, 액자를 선물 받는다고 했다. 노란색 튤립 사진이 있는 액자. 시키 씨는 그 액자를 처음부터 갖고 있던 거였다. 많은 의문이 하나씩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별이 다가오는 동안.」
2012年 4月 14日
十日四目
「시키 씨의 2일째. 작업실의 위치는 어제 와봐서 안다며 아침 일찍부터 찾아왔다. 들뜬 모습이 귀엽다. 어젯밤에 정성을 들여 만들어둔 튤립 액자를 건네주었다.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시키 씨는 이 사진을 찍을 때도 같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아주 좋아했다. 정말 행복하다고. 이러면 되는 거겠지. 내일이면 시키 씨와는 헤어지게 된다. 왠지 이 며칠 동안 말도 안 되는 일만 일어난 것 같네요. 그렇게 말했더니 시키 씨는 웃었다. “그래서 엘은 싫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싫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그래. 그동안은 아무런 생기도, 즐거움도 없던 날들이었으니. 시키 씨를 만나며 새로 느낀 것은 많았다. 그것이 비록 정해진 날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의외로 괜찮다는 것. 시키 씨처럼 신비로운 사람들은 무언가 꼭 숨기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 그래도 시키 씨에게는 이제 시작인 만남일 텐데, 이런 이야기로 진을 빼면 안 되겠지. 아무런 말도 이어가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시키 씨는 또 웃음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어제 먹었던 커피가 맛있었다면서, 커피 내리는 법을 물어봤다. 며칠 전 뻔뻔했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이 커피 머신은 다른 것보다 사용하는 게 불편해서 몇 번 해보지 않으면 적응되지 않을 거라 말했더니, 내가 잠시 한눈판 사이 커피를 다섯 잔이나 만들어두었다. 결국 마지막 한 잔은 끝내 마시지 못했다.」
2012年 4月 15日
十五日目
一日目
아주 작은 노크 소리. 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 그 앞에는 수첩에 적힌 약도를 바라보는 한 여자가 서 있다. 저……, 여기가 엘의 작업실이 맞나요? 소극적인 태도로 말을 건 여자를 보며 엘은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오세요, 시키 씨.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길은 안 헤맸나요?
네, 아뇨……. 사실은 조금 헤매서.
그랬군요.
엘은 그녀를 스튜디오 의자에 앉게 했다. 필요한 조명들을 준비하며 오늘따라 바짝 얼어붙은 시키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런 모습은 또 새로워서 귀엽다고 느낀다. 카메라를 세팅하고, 시키를 마주 보던 엘은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을 가리던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짝 정리해주며, 엘은 연한 미소를 지었다.
시키 씨, 긴장한 것 같네요.
네, 조금 긴장했어요.
오늘은 사진을 찍어드릴 겁니다. 소장용으로.
네! 여기에도 그렇게 적혀있고…… 5년 전에도 찍어주셨어요.
그때도 무사히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무사히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겪었던 일이니까!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그대로 셔터를 누르는 엘의 모습. 시키의 긴장한 모습이 화면에 가득 담기고 있다. 엘의 마지막 일정. 여러 번의 셔터음이 들리고, 조명이 반짝이다 꺼지길 반복하다가 이내 촬영은 끝난다. 카메라를 내려둔 엘은, 바로 인화 준비에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내려 시키에게 건네주었다.
특별히 궁금한 건 없나요?
궁금한 것…….
뭐든 좋아요.
…… 저는 좋은 연인이었을까요?
엘은 커피의 향을 맡아보고는 설탕을 넣었다. 티스푼으로 여러 번 저어가며, 한참을 녹이다 시키를 바라본다. 물론이죠, 충분히요. 시키 씨는 귀여운 연인이었어요.
이제는 함께할 수 없겠지만.
시키 씨는 저의 어제로 되돌아가며, 부디 즐거운 15일을 보냈으면 좋겠네요. 방금 나온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엘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시키에게 사진을 건네주고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인다.
오늘의 데이트는 끝났으니, 이제 가보십쇼.
내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