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크 메이커
트레이 클로버X하네카와 유카 - 모노
너의 죽음을 알게 된 건 몇 주가 지난 다음이었다. 나는 네게 있어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자주 찾아오는 손님, 단골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카페 주인. 그러나 너는 내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다. 내가 만든 디저트에 해주는 칭찬이 좋아 귀 기울여 듣게 되고, 다음에 또 오겠다거나 이 가게가 아니면 다른 디저트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그러다 보면 문 열리는 소리에 네가 왔는지 시선이 절로 가게 된다. 너는 내게 특별했으나 나라고 특별히 한 행동은 없었다. 네가 매번 사는 조각 케이크의 주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손에 낀 반지가 나를 움직일 수 없게 하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너는 정말 일주일에 한번은 꼭 내 가게를 들렸고, 밝게 웃으며 나와 대화해주었다. 네가 주문한 디저트에 좀 더 신경을 쓰고 돌아가는 길에 다음에 또 오세요, 라는 말을 전하고. 그것만으로 괜찮고 싶었다.
만약 그 모습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고백이라도 해볼 걸 그랬는데. 나는 네 부재로 인해 괜찮지 않았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너를 더 알고 싶어 그 사람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게 네 흔적을 찾아가는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내게는 짝사랑 했던 상대였지만, 그 사람에게는 하나 뿐인 소중한 연인이란 점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조차 가지 못한 위치였고,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너의 흔적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못된 생각인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내게 된다. 그저 보고 오는 정도는 괜찮잖아, 하고.
나는 처음으로 가게 문에 쉽니다, 라고 써 있는 안내문을 걸어두었다. 언제 돌아올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쉼이었다.
*
그가 어디서 살고, 어느 일을 하며 지냈는지 알고 있기에 그의 흔적을 따라 내가 찾던 사람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의 연인도 작은 카페를 한다고 했었다. 디저트를 직접 만드는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은 셰프를 둘 수 있다면 좋을 거란 말도 했었다. 도착한 카페 안에는 정말 그가 말한대로 꾸며져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고, 손님은 많지 않아 잔잔한 분위기를 이뤄내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음악마저 차분해서 카페 주인의 취향인지 그의 취향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걸 빌미로 말을 걸어볼까. 노래 취향이 좋으시네요, 어떤 곡이죠? 하고. 너무 진부한 시작일까. 카페 안을 한참 맴돌던 시선은 괜히 수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카페 메뉴판을 천천히 훑었다. 메뉴판에 쓰여진 종류도 어느 카페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였다. 디저트는 구매한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그의 흔적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가 좋아하던 조각 케이크가 있었다. 그 밑으로는 그가 매번 구매하던 조각 케이크의 이름도. 나는 그가 가장 좋아하던 케이크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미련을 담아 살폈던 메뉴판에서 시선을 떼고 이번에는 원래 목적을 위해 사람 하나를 찾았다. 상대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그가 말한 모습 그대로였다. 짧은 앞머리에 서로 다른 눈색, 저와 시선이 마주치자 활짝 웃어보이는 얼굴. 밝고 명랑한 목소리라 듣기 좋다고 했었지. 제 주문에 따라 답하는 목소리가 이미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처럼 익숙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만큼 그는 그의 연인을 사랑했고, 아꼈으며, 사이 좋은 커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제가 사랑했던 이와 똑같은 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저보다 먼저 알았을 이가 아직도 반지를 빼지 않고 있었다. 타인의 아픔과 제 아픔을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분명 같이 괴로울 것이다. 그래봤자 나만 공유할 수 있는 아픔이었지만. 나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넓지 않으나 혼자 일하는 카페 주인, 그가 먹었던 케이크의 이름과 나 같은 셰프를 카페에 고용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사람.
“알바생 필요없으세요?”
*
돌아오는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야 구인글도 없었고, 손님도 별로 없는 카페였다. 나도 케이크를 만들며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데 상대라고 못할 건 없었다. 포기, 라기보다는 납득이 되었기 때문에 머쓱하게 웃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쉬지 않고 운영한 카페를 냅두고 온 만큼 이대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나는 아직 그를 추억하고 싶었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게 당연해도 나는 매일 그 카페를 찾아갔다. 애초에 그의 흔적을 찾으러 온 것이니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돈이 넉넉한 건 아니었어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할 여유는 있었다. 자주 찾아오던 건 내가 아니라 그의 몫이었는데, 이제 내가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그가 없다는 현실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웃었을텐데. 그렇게 몇 번이고 카페를 찾아가자 어느 날 카페 주인이 웃으며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자주 오시네요. 혹시 알바 자리 아직 할 생각 있어요?”
“아, 네. 맡겨주신다면요.”
“실은 전에 있던 알바생이 그만둔 이후로 바로 구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때는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상대는 제가 모르기에 하는 말이겠으나 나는 갑자기 생긴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었다. 상대의 손에는 여전히 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작은 반지는 여전히 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돌아오는 답변이 없었는데도 상대는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전 하네카와 유카. 일본은 처음이세요?”
“트레이 클로버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요.”
제가 말하는 이야기라는 건 당연히 일본이란 나라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연인의 이름을 말한 적은 없었다. 간혹 가다 들려오는 통화로 비슷한 발음을 듣는 일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국어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으로 출장을 나오던 사람이었으니 영어쯤은 별 일 아니었을 것이다. 카페 주인, 하네카와 유카라고 소개한 상대조차 저를 배려한 일인지 몰라도 영어로 인사를 해줬고.
“그럼 카페를 둘러보시겠어요? 큰 가게는 아니라 할 일은 거의 없어요. 그치만 저도 쉬는 날은 있어야 하고…”
“하하, 그렇죠. 혼자 운영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죠.”
“가게를 운영한 적 있으세요?”
“네, 디저트를 만들었어요.”
“와, 대단해요! 저는 손재주가 없는지 아직까지 만들어본 디저트가 없어요. 따로 셰프를 둘 여건도 없고…”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미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손재주가 없어 가끔 굽는 쿠키마저 태운다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에 놓인 계산대와 물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급을 정하고,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해요! 하는 해맑은 답을 들을 때까지도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언제쯤 너를 놓을 수 있을까.
*
“그거, 뭐예요?”
“아, 이건… 별 건 아닌데. 음, 먹어볼래요?”
“직접 만들었어요? 진짜 가게를 운영했구나~”
“하하, 농담처럼 들렸어요?”
“그건 아닌데. 신기해서요. 어떻게 내 가게에 딱 셰프가 와줄 수 있지?”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 카페를 들락거리고, 알바생으로 고용되어 출근하게 된 일이 벌써 일주일은 지난 일이었다. 제 생각보다 길어진 미련이었으나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일은 원래 제 일상과 다르지 않아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예 집을 구해볼까… 그런 생각이 들자 본격적으로 일을 구하는 게 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셰프로 고용된다거나, 그런 거. 지나가듯 한 말이었겠지만 너의 말은 제게 유언처럼 남아버렸으니 원했던 걸 하나쯤 들어줘도 좋을 거란 핑계도 있었다. 계속 쉬면 손이 굳기도 하니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 쿠키를 구웠다. 카페가 여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달콤한 향에 기대가 가득 찬 얼굴을 주방에 내밀었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한 것치고 저는 상대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았구나 싶었다. 애초에 가질 수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제 막 구운 쿠키 하나를 집어 상대에게 내밀었다. 상대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와, 정말 맛있어요! 이거 정말…”
엄청난 칭찬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칭찬을 듣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사장에게 권유하는 느낌 정도였으니 맛있다는 말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상대가 상대라서, 그처럼 말해주길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맛있다는 말로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제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활짝 웃으며 말하던 이의 입꼬리는 내려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참아내는 표정이었다. 나는 곧 상대가 누군가를 떠올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사랑했으니 알 수 있던 것이다. 상대는 제 연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연인은 되지 못한 이를. 짧은 침묵 뒤에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연인이 사다주던 쿠키 맛과 비슷하네요. 정말 맛있어요.”
그가 내뱉은 말에 내 가슴은 철렁 주저앉은 기분이었다. 제 연인을 위한 디저트를 샀던 게 눈앞에서 증명 당하는 기분이었다. 선뜻 내가 만든 게 맞다고 답할 수도 없었다. 그치만 나는 왜, 그가 눈치챌지도 모르는데, 이런 걸 만들고 만 걸까. 나는 그저 웃어보였다. 사랑했던 이가 그리워 찾아온 곳인데, 지금 느껴지는 죄책감은 누구를 향한 감정인 걸까.
*
“오늘 시간 괜찮아요? 같이 저녁 어때요?”
“오늘이요?”
“으음, 바쁘면 할 수 없고…”
“아뇨, 괜찮습니다. 갈게요.”
“정말요? 다행이다~”
그 이후로 나와 유카는 시간이 괜찮을 때마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러가거나 하는 등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쿠키에 대한 건 서로 더 언급하지 않았다. 나야 당연히 아는 척을 할 수 없었고, 유카도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우연치 않게 정말 내 가게에서 쿠키를 산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겠지. 유카는 내가 만든 쿠키나 케이크, 디저트 전반을 먹지 않았지만 구입하는 걸 관두고 내게 디저트 제작을 맡겨주었다. 먹을 수는 없지만 팔지 않는 일도 아깝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떠난 이가 바랐던 일을 이뤄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때? 네가 좋아하던 케이크. 여기서 판매하고 있어. 케이크를 팔게 된 이후로 손님도 늘었대. 하하, 대단하지 않아? 내 말에 네가 대단하다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를 위해 내가 이곳까지 온 걸지도 모른다.
“이 가게, 어때요? 되게 유명한 곳이래요. 근처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좋은 가게인 것 같은데요. 맛도 있고, 분위기도 좋고.”
“아, 저 조명 어때요? 우리 가게도 저런 조명을 놓면 더 예쁠텐데!”
“흐음, 분명 예쁘긴 하지만… 지금보다 차분해 보이지 않을까?”
“차분한 건 안 어울린다는 소리죠?”
“응?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우리 가게는 좀 더 밝은 분위기잖아.”
“그렇긴 하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잔뜩 꾸몄으니까.”
둘만 있을 때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가게에 대한 이야기였다. 직원과 사장의 관계이기도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보다 제가 살 곳도 마련해주고, 간혹 가다 아는 지인을 소개하며 낯선 나라에 익숙해지는 걸 도와주었으니 단순히 직원과 사장보다 친한 친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내가 유카의 연인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건 모르고 있지만, 친한 친구가 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 잠시 길거리를 걷는 일도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다른 게 있다면 오늘은 그가 내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는 점이었다. 내게 뻗는 손을 순간적으로 피하자 유카는 개의치 않는 듯이 또다시 내 손을 붙잡았다. 갑작스럽지 않냐는 생각과 유카를 속인다는 생각이 들어 그 손을 뿌리쳐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그랬는데. 저를 잡아당기고 입술이 겹쳤다 떼는 순간까지도 유카를 밀어낼 수 없었다. 아, 그래. 그 카페에 발을 들인 순간, 내가 선택하는 건 그 사람의 흔적이 아니라… 우린 같은 사람을 사랑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겨우 카페에 그가 좋아하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리고 분명 유카도. 유카의 손에는 반지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제 케이크는 먹지 않는다. 그러니 분명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할 수 없다.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
제 연인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던 감정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인을 사랑했던 건 아니었다. 빈 자리가 크게 느껴져 그 자리를 채운 게 생각보다 무거운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저는 알고 있었다. 제 연인이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사오던 쿠키나 케이크는 분명 처음에는 저를 위한 일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건 맛이 어때, 네가 좋아하는 맛이라 사왔어, 하고 떠들던 목소리는 어느 새 사라져 카페 냉장고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케이크를 본 순간, 그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모습에 관심이 없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래도 좋았다. 저를 두고 마음도, 몸도 먼저 떠나간 이를 제 몸 상할 때까지 잡아두며 슬퍼할 성격은 아니었다.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우리 헤어질까, 하고. 그는 당황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그가 바람을 피운 게 아닌 건 맞았다. 그가 저를 두고 사랑하게 된 이처럼 보일 만핫 어떠한 문자나 전화는 없었다. 그저 출장을 더 자주 간다거나 쌓여가는 케이크를 보면서 왜 먹지 않았냐는 말 대신 그저 쌓아두기만 했을 뿐. 사실 이 정도로 우리가 헤어질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가 돌아오면 헤어지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설마 영영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의 소지품에는 여전히 똑같은 가게의 쿠키와 케이크가 있었다. 제 입으로 고하지 않은 이별에 불편한 기분을 안고 제 삶은 평소처럼 흘러가야만 했다. 제 손가락에 자리잡은 반지와 여전히 쌓인 케이크는 현실감이 없었다.
“커피랑 그리고…”
제 연인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 건 카페에 찾아온 손님이었다. 한동안 주문이 없던 케이크 중에서 그가 좋아했기에 넣어둔 케이크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떠나간 연인이 문득 생각나 그 손님을 바라보자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다. 예전에 찾아온 손님일지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넘길 수 있었을텐데.
“알바생 필요없으세요?”
뜬금없는 말이 제가 몰랐던 걸 알게 될 계기였을 줄이야. 그가 제 연인이 저를 두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는 건 그가 만든 쿠키를 먹었을 때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구나. 그도 우리가 연인이었던 건 알고 있을까? 정말 우연으로 인해 그가 내 가게에 찾아온 걸까? 아무래도 좋았다. 연인은 닮아간다더니, 저마저도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렇게 빨리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단 걸 처음 알았다. 빈 자리를 채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트레이란 사람이 좋았고, 그가 만든 케이크가 좋았다. 먹지 않았던 건 누구를 향한 죄책감인지 알 수 없었다. 빼지 못했던 반지를 빼고 그의 손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라도 더 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식사 약속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고, 그가 살 만한 집도 알아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그의 손을 찾아 잡은 일도, 입을 맞춘 일도 가벼운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런 소식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헤어짐을 고하지도 못한 채 떠나간 제 연인처럼.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저는 그가 떠나자 왜 떠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 그도 제 연인을 사랑했구나. 떠나간 빈 자리를 그리워하다 그를 사랑하게 된 저처럼. 우리는 그 무엇도 정리하지 못한 채 사랑하고 말았다. 그를 찾아가는 게 좋을까? 쌓여있던 쿠키통에 쓰인 가게명을 검색해 그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를 닮은 깔끔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를 볼 수 있었다. 제 연인이 사랑한, 그리고 어쩌면 제 연인을 사랑한 그를 보러 가는 게 맞는 일인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둘러쌌지만, 그는 제 연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고, 나조차도 트레이 클로버에게 아무런 존재도 될 수 없었다. 헤어짐조차 제대로 고하지 못한 채 연이 끝난 우리에게 남은 게 없는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날씨도 어제와 다름없이 맑은 날이었다. 직원이 떠나갔으니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하고, 가게도 평소처럼 운영해야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남기고 간 레시피가 남아있고, 메뉴판에는 제 연인이 좋아한 케이크가 써 있다. 우리가 한 사랑이 겨우 그 정도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