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터널 선샤인
큐다이스 - 다이스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 믿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난 바로 알았다. 내가 이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을 찾게 될 거라는 걸.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나.
사랑에 빠지면 매일 매일 행복할 것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좋아하는 만큼, 딱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행복하지 않다. 그 남자 덕분에 웃을 때마다 그 남자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더 많이 울게 된 어느날, 난 결심했다.
"......제 이름은 다이애나 테이트 그리고 Q, 그러니까... fuck. 죄송해요, 아직도 본명을 몰라요. 본명을 몰라도 상관 없나요?"
"상관 없습니다."
"네, 그러니까... Q를 지우러 왔어요."
"그에 대해서 얘기해보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아직도 본명을 몰라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국가 기밀이라고 하면서 절대 안 알려줘요. 자기가 무슨 볼드모트라도 돼요?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알려달라고 했는데 웃기만 해요. 그 얼굴로 그렇게 웃는 건 진짜 반칙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여태까지 참았지... 그리고 또 일이 너무 많아요. 정시에 퇴근하는 날은 거의 없고 퇴근해도 플랫에서 또 일을 한다니까요? 다른 사람은 못하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대요. 아니! 그게 맞긴 하지만! 그래도! 난 무슨 강아지처럼 앉아서 뒷모습만 보고! 그리고 또......
망설임과는 다르게 내 입에선 그의 험담이 줄줄 나왔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박사는 아주 사무적인 태도로 내 말을 경청하고, 가끔 차트에 뭔가를 썼다.
"다 됐습니다. 이제 내일 오후 3시까지 그와 관련된 물건을 모두 가지고 다시 오세요."
"네."
상담을 마치고 건물을 나오니 이상하게 날씨가 좋았다.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그와의 추억이 어찌나 많은지 아주 커다란 상자가 3개나 필요했다. 나는 엉엉 울면서 물건들을 박스에 집어넣었다. 무언가를 집을 때마다 그 물건이 왜 소중한지 생각하지 않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도 해야만했다. 해야하는 걸까? 취소할 수는 없을까? 취소할까? 하지만 나는 결국 취소하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물건, 내 물건들을 모두 챙긴 나는 테이블 위에 작은 쪽지만을 남기고 플랫을 떠났다.
잘 지내요, Q.
그와 관련된 물건들로 일명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끝낸 나는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난 그를 잊을 것이다. 그 감정, 그 기억, 그 생각, 그 사람, 그 사랑을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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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요, Q.
라쿠나에서 알려드립니다. 다이애나 테이트 씨는 본인의 결정으로 Q 씨를 기억에서 지우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만에 플랫으로 돌아온 나는 생전 처음보는 곳에서 우편물을 받았다. 그리고 봉투 속에 들어있는 내용과, 테이블 위에 놓인 쪽지, 그녀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플랫을 둘러본 뒤에 깨달았다. 이제 내 인생에 다이스는 없다는 걸.
처음 며칠은 괜찮았다. 그리고 일주일,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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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차갑고 햇살은 밝은 어느 주말, 다이스는 어쩐지 약간 충동적인 기분으로 리젠트 파크에 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생기가 넘쳤다. 다이스는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서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항상 가는 카페에서 산 라떼인데도 어쩐지 다른 맛이 났다. 기분이 이상해진 다이스는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보고, 컵 겉면에 쓰여있는 라떼라는 글자를 잠시 노려보다가, 핸드폰으로 결제 내역을 확인하기도 했다. 확실히 라떼가 맞았다. 그렇지만 뭔가 이상했다. 기분이 나빠진 다이스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고,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멈추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그와 다이스밖에 없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영원히 계속 될 것같은 기분. 여기서 그 남자를 아주 오래 기다렸던 것같은 기분. 처음이 아닌 것같은 느낌. 그리고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을 때 다이스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가 그 남자의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
"왜 이러지? 죄송해요, 처음보는 분인데..."
"......괜찮습니다."
어색하게 웃는 다이스와는 다르게 남자는 왠지 조금 슬프게 웃었다. 그리고,
"어? 어? 안 괜찮으신 거 같은데요? 저 때문인가요? 어떡하지?!"
"괜찮......"
다이스보다 한참이 큰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당황한 다이스는 한 손에는 라떼를 들고 한 손으로는 그 남자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그를 달래려고 애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괜찮으세요?"
"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에요. 저때문인 거같은데요, 뭐. 차라도 한 잔 하실래요? 그러면 분명 더 나아질 거예요!"
다이스는 남자와 함께 리젠트 파크를 나서면서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