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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의 인연

롤로노아 조로x 시레이스.D.로이아 - 로이아

“조로, 넌 전생을 믿어?”

 

흰색의 마이, 햇빛을 받아 말갛게 빛나는 연보라색 셔츠를 입고, 다리에 착 달라 붙는 A라인 치마를 입은 로이아, 그리고 그 뒤에 서서 칠흑 같은 정장을 입고 왼쪽 눈에 베인 듯 긴 흉터를 가진 녹발의 남자 조로. 질 좋아 보이는 회전의자. 그리고 그 앞 책상엔 무겁고 묵직하게 빛나는 명패엔 회장, 시레이스. D. 로이아 라는 음각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전생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말이야....”

 

 

-

기나긴 꿈 속, 여기저기 찢긴 화려하고 빛바랜 한복을 입은 둘은 적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조로의 어깨엔 이미 화살이 박혀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로이아의 가슴엔 독이 묻은 화살이 박혀 있었다. 한계에 다다른 그들은 절벽 뒤로 몸을 뉘였다.

 

“폐하, 당신만은 사셔야 합니다.”

“이제 한계야....”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조로, 만약 우리가 평범한 백성으로 태어났다면 그때는 우리가 맺어질 수 있었을까.”

“그, 그게 무슨....”

“은애한다.. 항상 전하고 싶던 말이었다. 이제야 전하게 되는구나... 그래도 전할 수 행복했다. 조로...”

“폐하...? 폐하!!!!!!”

 

똑, 똑 떨어지던 비는 쏴아아 장대비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조로는 그 끝없고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절규하듯 소리질렀다.

 

 

망해가는 황국. 술과 쾌락에 빠져 재정을 돌보지 않던 이전 황제들, 그리고 그 황권이 점차 약해지자 권력을 잡은 외척 세력들은 좀더 저들의 손에 올려놓고 놀 허수아비 황제가 필요했다. 그것이 지금 황제의 자리의 오른 로이아. 전 황제의 직통이었지만 어리고 그저 아름답기만한 공주 로이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이니 적당히 저들 중 권력이 높은 자의 아들과 결혼을 시켜 황제자리까지도 손 위에 올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화려한 황성 밖은 언제나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비명으로 가득했고 관리되지 않은 거리와 골목은 썩은 악취로 가득했다. 로이아는 이미 그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바꾸어 나가야지. 로이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런 외척세력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성의 주요직은 모두 그들의 것이었고 세금을 내리는 것도 백성을 돌보는 것도 로이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밤이 차갑습니다. 폐하. 들어가십시오.”

꽃잎이 휘날리는 이른 봄. 낮에는 꽃잎이 휘날리고 잔잔한 바람이 불었지만 밤은 아직 얼음같이 차가웠다. 로이아는 하얀 속곳 저고리와 치마만 입은 채 황궁 안 연못다리에 앉아 유유히 헤엄치는 알록잉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선 그의 호위무사 조로. 검 하나를 들고 가만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괜찮다. 서늘한 날씨가 꽤 맘에 드는구나.”

 

조로는 공주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무사였다. 공주일 때는 친구 같은, 스승 같은 호위무사로 황제가 된 이후엔 항상 그의 등 뒤를 지켜주는 호위무사로 자리매김하여 언제나 그를 지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이러다 고뿔에 걸리십니다. 폐하..”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황제가 무슨 황제인 것이냐. 차라리 고뿔에라도 걸려 나오고 싶지 않구나.”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이 나라의 황제는 당신입니다. 그 자리에서 약한 소리를 하시면 백성들은 더욱 고통받을 뿐입니다.”

 

덤덤하면서도 신의에 가득 찬 그의 심지 굳은 목소리. 그는 로이아를 변화시키기엔 충분했다. 정신을 차리고 조복을 갖춰 입은 로이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황궁의 재정을 줄이고 곡창을 열어 다 먹지도 못하고 쌓여만 가는 쌀과 재물들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과거시험에 직접 나서 젊은 관료들을 추출하고, 그 젊은 관료들을 각 지방으로 파견해 썩은 탐관오리들을 모두 벌하였다. 그제서야 숨통이 트인 백성들은 입을 모아 로이아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로이아는 굶주린 백성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배가 불러지기 시작한것은 최근의 일이었고 속부터 썩어간 도탄을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쥐와 해충이 들끓던 골목에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조정의 외척세력들은 이 기회를 잡아 어리고 불길한 여자가 황제가 되어 하늘의 분노를 샀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혼돈에 빠진 백성들은 거름없이 이를 받아들이곤 로이아를 찬양하던 자들까지 다시 어차피 망해가던 나라였다며 다시 무기력해질 뿐이었다. 시국을 틈타 제국을 호시탐탐 노리던 주변의 왕국들은 외척들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제국엔 망국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밤. 조용하던 황궁의 구석에서 작디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며 금새 황궁은 불씨에 잠식되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군사들의 함성소리. 급히 잠에서 깨어난 로이아는 속곳 차림으로 벽에 걸려있던 검 하나를 빼어 들고 나와 군사들 앞에 섰다. 하지만 황궁의 군사들은 이미 외척들에게 넘어가 황궁에는 그저 로이아의 호위무사인 조로만이 남아 그를 지킬 뿐이었다.

 

“어서 도망가십시오! 폐하!!”

“혼자 도망쳐서 무엇하겠느냐? 내가 여기서 도망가면 백성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당신은 사셔야합니다!!”

 

조로는 앞선 군사들을 해치며 길을 뚫고 나아갔지만 도성 밖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도,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앞을 막은 군사들을 뚫고, 황궁 뒷산으로 숨어들어 어찌저찌 몸을 숨겼지만 그들의 목숨은 거기까지였던 슬프디 슬픈, 꿈의 마지막... 침대에서 눈을 뜬 로이아는 푸른 눈동자 아래로 투명한 눈물을 가득 흘리고 있었다.

 

-

 

“조로, 이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어. 하지만 이 회사는 그때의 황국과 달라. 아무런 노력없이 황제가 되었던 나, 그리고 온전히 내 힘으로 이 곳까지 올라온 나. 달라도 너무 달라. 하지만 너는 여전히 내 곁에 있구나..”

“회장님. 전 진작부터 그때의 당신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망국의 기운이 올라오던 그 순간에도 꼿꼿하던 당신. 불타는 전각 앞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칼을 휘두르던 아름다운 그 모습, 그리고 마지막 순간 느껴지던 당신의 뜨거운 피의 온도까지도..... 다 당신을 처음보던 순간, 떠올라 버렸습니다. 어쩌면 다시 당신 곁에서 완벽히 당신을 지킬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마지막 들었던 그 고백 몇 천년이나 지난 지금 대답을 들려드릴 수 있겠군요. 저도 사랑합니다. 로이아.”

 

조로는 어느새 로이아의 의자 곁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세워 무릎을 꿇었고 눈 앞에 앉은 로이아의 손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나도 사랑해. 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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