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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Me By Your name

​호크푸름 - 미레도

아이스크림

미레도 | 호크푸름

(Call Me By Your Name)

 

푸름의 컴퓨터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구글이나 유튜브는 시스템적으로 일본어 컨텐츠를 추천했으나, 사이트 설정 자체는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Google 계정 관리” 버튼을 누르면 ‘青い님, 환영합니다.’라는 안내 화면이 떴다. 푸름의 노트북은 일본과 한국이 애매하게 섞여 있는 모습이었으며, 이는 어쩐지 푸름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푸름은 한국인이었다. 일본인 국적을 취득했으니, 한국계 일본인이라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푸름은 자기 자신을 여전히 한국인이라 생각했다. 푸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언론은 물론 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동고동락한 친구들에게도 비밀이었다. 그들에게 푸름은 푸름이 아닌, ‘아오이’였다.

세간에 공개되어 좋을 게 없었다. 푸름은 한국계 일본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것이 비난의 사유가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푸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다. 푸름이 한국인인 것을 아는 사람은 애인인 호크스가 유일했다. 푸름은 그 사실에 종종 안도감을 느꼈다. ‘아오이’ 대신 ‘푸름’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 그것은 푸름에 대한 증명이었다. 다들 ‘아오이’만 기억한다면, 푸름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푸름에 대한 기억을 혼자만 짊어지는 건 상당히 외롭고 힘든 일 일거라고, 푸름은 생각했다. 푸름은 이런 류의 생각을 그만두려 노력했다. 어쩐지 자기 자신에 대해 파고들수록 울적해졌다.

호크스가 귀가한 건 오후 아홉 시였다. 푸름이 거실 소파에 누워 유튜브로 한국 드라마 클립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푸름은 핸드폰을 끄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안방 문을 열자 찬 바람이 훅 불어왔다. 반쯤 열어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침대 위에는 호크스가 엎어진 채 누워있었다. 푸름은 창문을 닫은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말 없이 호크스의 머리칼을 손으로 흩트렸다.

“루미짱.”

먼저 입을 연 건 호크스였다. 이불에 얼굴을 박은 상태였기에 발음이 조금 뭉개져 ‘으이짱’처럼 들리기도 했다. 루미짱은 호크스가 푸름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푸름이 한국인인 것과 함께 본명 ‘연푸름’을 밝힌 후부터 호크스는 푸름을 그렇게 불렀다. 본명을 들은 호크스는 연푸름을 발음해보려 했으나, '름' 발음에 계속해서 실패했다. 루미짱은 름 발음을 어려워하던 호크스가 먼저 제안한 호칭이었다. 푸름은 그 호칭이 좋았다. 본명의 연장선이면서, 호크스의 단어장에 자신만을 위한 호칭이 등록된다는 게 좋았다.

“미안해요, 혼자 퇴근하게 해서….”

“괜찮아요, 긴급 호출이었잖아요.”

저 그런 걸로 안 삐치거든요. 푸름은 우물거리듯 이어 붙였다. 푸름의 말에 호크스는 바람 빠지게 웃었다. 호크스는 팔을 뻗는 것 마냥 날개를 뻗어 푸름을 감쌌다. 푸름을 자신의 옆에 눕히곤, 팔과 날개로 살살 끌어안았다.

“루미짱…. 저 잘하고 있는 걸까요.”

루미짱이란 호칭 이후 긴 틈을 두고 문장이 이어졌다. 호크스는 푸름의 목 언저리에 제 머리를 기댔다. 푸름은 손으로 호크스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곤 조용히 뺨에 입 맞춰 그를 위로했다. 안방에서는 한동안 어떤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푸름은 호크스의 우울이 좋았다. 정확히는, 그가 자신에게 우울을 털어놓는 순간이 좋았다. 그런 순간이면 호크스가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푸름은 자신이 호크스에게 이로운 사람이었으면 했다. 푸름은 호크스가 간절했다. 푸름에게 호크스는 멘토이자, 이상향이었고,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푸름은 호크스도 자신을 ‘필요’로 여겼으면 했다.

“언제나 잘하고 있으시죠.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호크스는 매일 아침마다 저를 구하는 거나 다름없는 걸요.”

푸름은 제게 기댄 호크스의 귓바퀴를 손끝으로 건드리다 말했다. 호크스는 고개를 들어 올려 푸름과 눈 맞춘 후, 옆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눈치가 너무 빠르세요.”

           푸름은 투정하듯 말했다. 호크스는 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푸름에게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오-, 알려줘요-. 푸름이 자신의 어리광에 약한 것을 알기에 하는, 완전히 의도된 행동이었다.

푸름은 하는 수 없이 오늘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있던 일이라기보다는 호크스가 집에 없는 동안 혼자서 생각한 것에 가깝지만…. 그리고 아주 방금 자신이 부렸던 욕심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에 대해. 자신에게 호크스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어쩐지 사랑을 고백하는 기분이었다.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와 푸름은 모든 말을 끝낸 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호크스는 가만히 경청하다가 푸름을 자신의 품에 가뒀다. 푸름은 조금 더운 것 같다 느꼈으나, 그의 품을 벗어나려 하진 않았다. 몸이 너무 가깝게 붙어있어, 푸름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호크스에게 들릴까 걱정했다.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자신의 심장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몸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었는지를 잊었다. 머리가 팔이고, 가슴이 등이고, 배가 어깨이고. 푸름은 어깨에서 설레어 하고, 손끝에서 심장박동을 느꼈다.

“그런 걱정하지 마요. 충분히 그런 존재랍니다, 제게 루미짱은.”

심장이 당장이라도 역류해 입에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루미짱. 이 호칭은 당신만을 위한 거예요.”

호크스는 힘주어 푸름을 안았다. 푸름은 눈을 꾹 감았다. 몸에 열이 올라 이대로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을 것 같았다. 호크스는 푸름을 껴안은 채 루미짱, 이라는 호칭을 여러 번씩 반복했다. 루미짱, 루미짱, 루미짱…. 루미짱루미짱루미짱루미짱루미짱….

열이 끝없이 올라갔다. 이미 몸이 반쯤 녹은 것 같았다. 푸름은 생각했다. 하나가 되고 말 거야. 서로가 서로가 될 거야.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될 거야. 푸름은 호크스의 뺨에 입 맞췄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말했다. 저희. 이러다 하나가 될 것 같아요. 푸름의 감상에 호크스는 소리 내어 웃었다. 푸름의 뺨에서부터 목까지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럼, 저를 호크스 말고, 루미짱의 이름으로 불러줘요.”

푸름은 입으로 옅은 숨을 뱉어냈다. 숨이 심장 뛰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오래도록 달리기를 한 사람 마냥 숨이 벅찼다. 모자란 숨을 보충하느라 말을 바로 뱉어내기가 힘들었다.

“루미짱.”

“아니, 그거 말고.”

호크스는 여전히 푸름을 매만졌다. 호크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푸름의 몸은 점점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몸은 호크스와 합쳐지고 있었다.

“…푸름. 푸름아. 연푸름.”

“응, 그거. 푸, 푸르, 푸르미.”

여전히 그는 푸름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호크스, 호크스씨.”

호크스가 푸름을 불렀다. 푸름은 그에 ‘네, 푸름아.’하고 대답하며 대화를 이었다. 둘은 한참 동안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불렀다. 몸이 완전히 녹아내릴 때까지. 우울 같은 단어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푸름아.”

푸름은 푸름을 발음했다. 푸름아푸름아푸름아푸름아푸름아. 발음이 뭉개져 푸름아, 보다는 푸르마에 가까웠다. 오히려 푸름은 발음을 못 하는 것에서 자신이 호크스가 되어가는 것 같다 느꼈다. 푸름은, 푸름은, 푸름은. 아니 어쩌면, 호크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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