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에 걸린 사랑
길라라 - 별솜
이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아니, 애초에 어쩌다가 이 일이 여기까지 와 버린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라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 일들이 모두 꿈과 같았다. 아니, 차라리 현실이 아니라고 해 준다면 너무나도 고마울 듯 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오늘 내가 겪은 대서사시 급의 일이 다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것만으로 고마울 텐데.
분명히 아라는 오늘 아침에만 해도 결혼식을 올릴 새 신부이며, 한 국가의 공주였다. 하지만 어찌저찌 아라 본인조차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믿지 못했다. 갑자기 소원의 우물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우물 속으로 풍덩,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빠져 버렸다. 그래서 나온 곳은... 웬 동그라미 모양의 쇠 뚜껑 밑이었다. 그것도 향기로운 소원의 우물물이 아닌, 악취가 나는 쇠 뚜껑.
하지만 이런 것들로만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끝났다면 얼마나 다행이려나. 조용한 숲 속에서 놀 때는 소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조그마한 동물 친구들의 노랫소리와 새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시냇물이 신나게 흘러 내려오는 소리가 소리의 다였으며, 공기 역시 청명한 푸른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였다. 거기다가 모든 동물 친구들이 자신을 도와주고, 지켜주고, 함께 놀아서 위험한 것이나, 나쁜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자신을 이 세계로 보내버린 나쁜 에드워드의 계모를 제외하면- 착하고, 순수하고, 정직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아가던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낮부터 사기에, 말도 안 되는 일들에, 거기에다가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지금까지 나, 나름 착하고 예쁘고, 동물들에게도 잘 해 주고, 정직하고 순수하게 잘 살았다고! 라면서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왕자님의 계모가 날 그 말도 안 되는 우물로 끌고 간다고 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어. 나를 보면서 눈을 어둡게 째려볼 때부터 알았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아라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삼켰다. 잠시 분노와 당황이 가시고 나자,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었다. 그래, 일은 엎질러졌고, 이제 내가 이 고생길을 해쳐 나가야 해. 동물 친구들이라도 불러 와야 하나. 아니, 그러다가 동물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아라는 한 발 한 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치렁치렁하고 반짝반짝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걷는 일은 정말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걷는 것도 걷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 역시 더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뭐요! 나 공주라고요, 공주!’ 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선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부터 찾아야 했다. 현명한 공주 강아라는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투덜투덜 걸어가던 그 때, 아라는 난데없이 자기 치마를 밟아버렸다. 그 순간, 발 역시 미끄러지며 아라는 뒤로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어어, 라고 말하던 그 순간, 고꾸라지며 아라는 생각했다. 아,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왕자님이 이런 걸 잡아 주었는데. 이제 그런 것도 없으니, 굉장히 아프겠지. 젠장. 그냥 우물에다가 소원을 빌러 가지 말걸!
하지만 그 때, 누군가가 아라를 붙잡았다. 아라는 고꾸라지고 있던 고개를 들려 세웠다.
“저기, 괜찮으세요?”
그렇게 묻는 상대의 얼굴을 본 아라는 얼굴을 확, 하고 붉혔다. 금발벽안의 근사한 왕자님. 그래, 이 세계에도 왕자님이 있다니까? 좋아, 여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동화’를 써 보겠어! 그 다음에는, 정말 말짱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세우는 거야. 이제부터, 더 이상 예쁜 공주님으로만 있어서는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자, 아라의 마음속에는 다시금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가 투철하게 넘쳐흘렀다. 눈앞에 있는 왕자님 (?) 과, 동물들과 요정과 함께라면, 결코 어렵지 않으리라고, 아라는 믿고 있었다.
아라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왕자님 성함은 어떻게 되시죠?”